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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백단(張伯端)『오진편(悟眞篇)』의 내련학설

    장백단(張伯端)『오진편(悟眞篇)』의 내련학설  1. 개요 장백단의『오진편』은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고,『참동계』이후 도교 기공양생학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주요 경전이 되었다.장백단은 황로의 옛 경전을 고르고 내련의 이론을 밝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도법의 연원을 드러내었고, 또한 후학들이 이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일천여년 동안 도교도들은 모두『오진편』에 관해『참동계』를 계승한 또 하나의 참된 경전이라고 생각하였고, 남종과 북종 모두에게서『오진편』이 존중받았다. 장백단 내단 이론은『오진편』,『옥청금사청화비문금보내련단결』과『금단사백자(金丹四百字)』의 세 저서를 통해 알 수 있다.      2.『오진편』의 기본 사상   장백단은 자신의 도가 황제와 노자의 가풍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여러 곳에서『노자』와『음부경』의 학설을 인용하여 그의 내련학설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장백단은 자신의 내련학설을 ‘天仙道’라고 불렀다. 수련을 통하여 정기신을 응결하고 흩어지지 않게 하여 金丹을 만드는 것이 천선도이다. 또한 장생하는 신선이 되려면 반드시 성리에 통달하여 본원진각지성(本源眞覺之性)을 탐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장백단은 불교를 융합하여 도교에 끌어들였고, 나아가 성명쌍수(性命雙修)와 선명후성(先命後性)의 내련 체계를 구성하였다.      3. 先命後性의 내련법결 장백단은 황로학설을 자신의 철학적 근거로 삼아 위백양의『참동계』단법 체계를 곧장 계승하였고, 또한 유교와 불교를 끌어들였다. 장백단은 성명쌍수를 내련의 요지로 삼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련 단계로는 먼저 명을 닦고 나중에 성을 닦는 선명후성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북종과 다른 점이다. 성명쌍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인체의 정기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정기신은 하나의 혼연일체이지만,『청화비문』에서 수련의 진행과정상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그 작용을 논의하였다. 첫째, 심이 군주라는 논의이다. 신이 심에 저장되어 있어 심이 움직이면 신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신이 중요하다는 논의이다. 신이 정기를 다스리므로, 단법은 신을 닦는 것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셋째, 의식의 작용이 매파라는 주장이다. 의는 심에서 나오는데 삼보를 제어하여 조화시켜서 중간의 매개 작용을 한다. 넷째, 기가 작용이 된다는 주장이다. 원신이 나타나면 원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정이 기를 따라다닌다는 주장이다. 원기가 생성되면 원정이 만들어진다.결국 정기신 삼보는 서로 의존하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수명과 수성이 확연히 구분되는 두 가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4. 네 단계의 수련법 장백단은 진단의 내단 수련법을 계승하여 네 단계로 나누어 논의하였는데, 築基, 煉精化氣, 煉氣化神, 煉神還虛이다. 축기는 내련 공부의 출발점으로, 성명쌍수를 강조하고 있다. 연정화기는 정과 기를 기르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명공에 치우쳐 있다. 연기화신에 이르면 성공이 명공보다 비중이 크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인 연신환허는 순수한 성공이다. 축기는 수심 · 존심 · 내시 · 입정 · 調神 · 調精 등이 중요하다.『오진편』의 아홉 번째 칠언율시에서는 정기신 삼보를 반드시 함께 닦아야 한다는 강조했다.『청화비문』중권에서는 이 상태에 이르면 축기 공부가 완성되고 바로 정기신이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여, 연정화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연정화기는 채약 · 봉고 · 연약 · 지화의 네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단경에서는 ‘四口訣’이라고 한다. 채약과 입로, 그리고 봉고가 모두 불을 움직여 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약을 만들고 정을 단련하는 소주천 공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광삼현(陽光三現)’이 발생하는데, 명당에서 2번째의 양광이 출현 할 때 반드시 지화(止火)해야 한다. 양광삼현 할 때, 진양이 응결되어 뭉쳐지고 순수한 건(乾)의 상태로 대약이 만들어지니, 곧 연정화기가 마무리되는 기틀이다.   연기화신은 연정화기의 바탕 위에서 기와 신을 함께 단련하여 기가 신으로 돌아가서 신과 기가 함께 응결되게 하는 공부이다. 그 실질적인 내용은 연기화신 역시 한 단계 진보한 수준에서 신과 기를 응결시키는 것으로서 유위를 넘어 무위에 도달하고, 고요히 관조하여 모든 것을 저절로 그러한 상태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연신환허의 단계로 들어간다.   연신환허는 장백단 단법의 최고 경지이다. 여기에 도달하면, 곧 항상 안정되고 항상 고요하며, 감이수통(感而遂通)하고, 사대가 공으로 돌아가며, 생사를 초월하여 천지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대해탈(大解脫)을 얻게 된다.      5. 결론   장백단의 사유방법과 수련 방법은 선종과는 완전히 다르다. 장백단은 정신을 주체로 삼으면서도 열반의 피안 세계가 아닌, 형체를 갖춘 채 장생구시하는 것을 갈망하였다.그러므로 장백단이 불교를 끌어들인 주요 목적이 학자들로 하여금 불교와 도교를 함께 닦아서 성리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의 최종적인 귀결점은 역시 도교 전통의 성명쌍수이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한국도교 연구의 회고와 과제

    한국도교 연구의 회고와 과제- 김낙필(원광대 동양종교학과 교수, 한국기공학회, 한국도교문화학회 회장) I. 머리말   도교사상은 유교사상 및 불교사상과 함께 우리 나라의 전통사상을 구성하는 삼대 요소의 하나이다. 그러나 도교사상이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을 과소 평가할 수 없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공감하지만 유, 불에 비해 한국 도교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그 원인은 우선 도교에 관련된 직접적 문헌자료가 많지 않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도교사상의 경우 이를 주체적으로 담당하는 계층(불교 교단이나 유림과 같은)이 뚜렷하게 역사적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도교사상은 은둔적 지식층이나 민중들간에 면면히 전승되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 결과 뚜렷하게 도교 고유의 자료라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된 것이다. 직접적 자료가 적은 대신 한국문화의 다양한 분야에 도교사상의 편린들이 숨어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도교사상은 불교나 유교, 민간신앙 속에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의학, 문학, 예술, 전통적 과학 등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숨어 있는 도교적 요소들을 드러내어 종합적으로 밝히는 것이 쉽지 않음은 알 수 있다. 또한 중국도교에 대한 연구도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일반적 추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확산되어 많은 연구업적이 축적되었으며 한국도교 연구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도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효시는 1930년대 무렵 출판된 이능화(1868-1945)의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 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도교의 연구는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째 태동기로서 이능화로부터 해방 이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능화의 연구 이후 한국도교 연구는 상당 기간 공백기에 접어든다. 이 분야에 관한 관심이 다시 대두된 것은 문학 방면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 중반에 국문학, 중국문학 등의 영역에서 도교사상이 문학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과정 중 한국도교의 연구가 촉발된 것이다. 이 시기로부터 현재까지의 연구는 1980년대 초 도교 관련 전문학회가 설립될 때까지를 한국도교에 관한 관심의 발흥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여러 영역에서 한국도교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고조된 시기이다. 셋째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도교학회, 한국도교사상연구회(현재는 한국도교문화학회) 등의 전문학회가 조직되어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를 한국도교 연구의 정착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1997년도 이후에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선도(仙道), 기공학(氣功學), 기과학(氣科學)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결실로서 도교관련 전공이 대학원에서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특기할만하다. 이 흐름은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서 한국도교 연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 시기를 독립된 또 다른 흐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정착기에 포함시켜 논의를 진행시키기로 한다.  II. 태동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는 중국도교사 자체에 대한 외국 학자들의 통사적 업적이 태동단계에 머무는 시기(1930년대)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국학을 진흥한다는 애국적 동기에서 한국도교의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는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으로부터 자료라든지 도교에 관한 인식의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규경은 한국 도교의 원류라던가 역사적 전개과정에 최초로 체계적 인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이규경은 도가와 도교를 구별하는 관점도 지니고 있었고 중국도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규경에게는 유학자적인 시각을 여전히 지니고 도가 및 도교사상을 이단시한 면이 보인다. 이에 반해 이능화는 국학자답게 민족 주체적 시각을 도교연구에 반영하였다. 한국의 고유사상을 선도(仙道)라고 규정하고 도교의 원류가 한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의 {조선도교사}에서는 한국고유사상이 선도적 성격이 강하고 신선설화의 원류가 한국에 있음을 역점을 두어 밝힌다. 이 밖에 도교적 제천의례를 높이 평가하여 민족의 자주정신을 선양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도 그 시각의 연장이라 할만하다. 이능화는 이 밖에 도교와 불교의 습합 현상, 도교와 민간신앙, 도교와 신종교와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도교연구의 폭을 높였다. 그러나 조선조의 도가철학에 관한 연구는 의외로 빈약한 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조에서의 소격서(昭格署) 혁파를 둘러싼 논변에 상세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특이하다.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그의 연구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지녔다는 것 외에도 자료의 한계라든지 자료에 대한 문헌비판적 검토가 부족했다는 것 등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그의 {조선도교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체계적인 도교사의 서술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도교연구가 자료나 문제의식의 범위에서 최근까지 그의 {조선도교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신채호나 권상로의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이능화의 연구만큼 체계적인 것은 못되나 한국 고유사상의 특징을 선도로 규정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김유동(金?東)의 {도덕연원(道德淵源)}에는 조선시대의 여러 도교문헌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 {해동이적(海東異蹟)}, {청학집(靑鶴集)}이나 야담을 종합하여 정리한 한국의 도교 인물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연구에도 국학자적 애국의식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이능화나 신채호 등과 비슷한 노선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태동기에 제기된 문제 가운데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은 한국도교의 기원문제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사상과 우리 나라에서 고대로부터 흘러왔던 고유사상과의 관련문제로서, 도교사상이 우리 나라 고유의 고대사상과 매우 상통한다고 추측되는 데서 초래된 문제이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고조선시대의 고신도(古神道)사상의 지류(신선설화)가 중국으로 흘러가고 중국에서 다시 우리 나라로 전승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도광순 등도 이 견해를 따른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입증하거나 반증할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으므로 앞으로의 연구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견해와 관련되면서 제기되는 문제는 한국고유의 사상과 중국에서 전승된 도교사상과의 개념 구별이다. 이는 특히 한국사상의 고유성을 논의할 때 거론되는 문제로서 이의 거론근거는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고대의 풍류도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는 폭을 지녔다고 보는 데 있다.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도 최치원의 기록을 원용하면서 고유사상을 신도(神道), 중국에서 전승된 사상을 선도(仙道)라 구별한 바 있다. 신선사상의 원류가 한국에 있다면 한국도교의 연구는 마땅히 고대사상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며 실제로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도교가 중국에서 발생하여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이라면 중국도교의 전래 이후부터가 연구의 기점이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일단 한국 고유의 고대사상과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사상을 구별하여 따로 연구한 후 그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 생산적으로 보인다.  III. 발흥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가 1977년 이종은(李鍾殷)에 의해 국역되고 차주환(車柱環)의 개척적 노작인 {한국의 도교사상}이 출판되면서부터 한국의 도교연구는 문학의 분야에서 차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전후하여 이종은의 {韓國 詩歌上의 道敎思想 硏究}가 출판되었다. 한편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듯 한국도교 연구의 초기 단계는 국문학, 또는 중문학계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야의 중요업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차주환의 {한국의 도교사상} 이능화의 {조선도교사}가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면 이를 토대로 자료를 학문적으로 해석하면서 서술한 최초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아직 도교가 충분히 소개되지 못함을 감안하여 도교에 관한 개괄적 소개도 포함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자료가 의거하는 범위는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바탕하고 있으나 도교의 기원문제나 신선사상의 전래문제에 대한 관점에서는 보다 객관적이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밖에 조선조의 도교의학에 관한 부분을 새롭게 부각시킨 면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이 책은 필자가 인정하듯 도교사에 대한 통사적 서술이라기보다는 논문모음집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내용에 약간의 중복이 있다. 2) 이종은의 {韓國 詩歌上의 道敎思想 硏究} 한국문학 작품, 그 중에서도 시가에 나타난 도교사상을 밝혔다. 그 동안 주로 유교적 시각에서 접근하던 전통에서 새롭게 도교사상과의 관련에 주목함으로써 이후의 국문학계의 한국도교연구의 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3) 이종은의 {조선도교사역주}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를 국역한 것으로서 한국도교사상연구에 기반을 형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문의 충실한 번역에 치중하였으나 주석작업의 측면은 미진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의 도교학계의 일천한 학문적 역량을 고려할 때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만하다. 한국도교 분야에 관한 관심이 철학계로 확산된 데는 1979년 한국철학회에서 {한국철학연구(上中下)}를 편집, 발행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한국철학사를 쓰기 위해 유, 불, 도 삼교를 균형 있게 탐구한다는 의도 하에 기획되었다. 그러나 도교분야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듯 유, 불에 비해 매우 소략한 편이다. 한국철학회에서 1987년에 발행한 {한국철학사(上中下)}에도 {한국철학연구}와 유사한 정도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으며 도교분야의 연구도 {한국철학연구}에 비해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 후에 나온 몇 가지 한국사상사에 관한 통사적 서술을 보더라도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후의 한국도교 연구의 성과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중국도교의 경우 중국사상사의 서술에서 유, 불과 점차 균형 있게 서술되는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도교사상의 근본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일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둘째, 한국도교의 경우 세계관이나 실천론이 지니는 특징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하며 셋째, 유교나 불교에 비해 한국도교가 담당해왔던 역사적, 사회적 역할에 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집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이 해결되어야 한국사상사에서 한국도교가 균형 있게 다루어질 것이다. 한편 한국철학회에서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거둔 또 하나의 소득은 철학적 모색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도교의 개념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논의는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이 분야의 연구가 진일보하는 계기를 형성하였다. 도가와 도교의 개념설정의 문제는 도교연구의 범위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으로서의 도가사상과 신선사상, 민간도교 등의 여러 요소가 혼합된 종교로서의 도교를 구별하자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도가철학과 도교사상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각각의 사상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방법론적 반성에서 대두된 입장이다. 이는 비교적 일찍부터 도교사상에 관심을 기울였던 국문학 및 중문학계에서부터 거론되었다. 예컨대 이종은은 철학으로의 도가철학과 종교로서의 도교사상의 구별을 역설하고 이능화가 양자를 구별하지 않은 것은 방법론상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문학의 영역에서 실제로 발표된 연구 업적에는 양자를 구별하는 입장이 엄밀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이와 같은 경향은 문학적 소재뿐만 아니라 도교사상의 여러 분야를 포괄하여 폭넓은 소재를 다룬 차주환의 {한국도교사상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그 역시 구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실제로는 편의상 도교연구에서 도가철학을 제외시키지 않고 있다. 그 구별이 문학적 탐구 분야에서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양자의 구별이 철학계에서 거론된 것은 1979년 한국철학회에서 출판된 {한국철학연구}를 통해서이다. 그 책 중 도교관련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논평자들은 대체로 그러한 구별이 필요함을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1987년 출판된 {한국철학사}에 이런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입장은 도교사상으로부터 도가철학적 요소를 선명하게 분리시킴으로서 순수한 철학적 탐구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일단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도교사에서 도가와 도교가 사상적 연속성을 지니며 내려왔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아 속단하기 어렵다. 한국도교의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실제로 한국사상사에서 도가 및 도교사상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도가사상을 수용해 형성된 도교의 철학적 측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두 가지를 고려하면 양자를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것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경우 도교의 전개 모습은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은둔적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신선사상, 둘째 교단적 체제를 갖춘 교단도교, 셋째 소박한 민중들간에 유포된 민간도교적 양태이다. 이것은 물론 절대적인 구분기준은 될 수 없으나 도교에 접근할 때 매우 유용하다. 여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도가(道家)사상도 도교사상의 범주에 포함시켜 한국도교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윤찬원의 \\"도교개념의 정의에 관한 논구\\"에서도 도교와 도가의 개념규정에 관한 여러 주장들을 검토한 끝에 도가와 도교간의 불연속성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발흥기는 한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나 아직 충분히 개화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도교 자체에 대한 연구부분에 있어서 근거 자료나 문제에 대한 접근의 시각이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IV. 정착기   한국 도교뿐만 아니라 도교 일반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한국도교학회(1982년)와 한국도교사상연구회(1984년)의 창립이었다. 이들 두 학회는 창립 이래 각각 독자적 연구지를 출판해 오고 있다. 도교학회에서는 {도교연구}란 책명 하에 모두 12권을 출판하였으며 한국도교사상연구회(오늘날은 한국도교문화학회)에서는 {도교와 한국사상}(1987), {도교와 한국문화}(1988) 등의 주제 하에 모두 12권의 논문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연구자의 수나 연구여건이 미비한 현실에서 학회의 분화는 연구역량의 분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학회의 결성을 계기로 한국도교 연구는 대체로 몇 가지 방향에서 진일보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국문학, 철학의 측면뿐 아니라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의학, 종교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접근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문학계에서는 최삼룡의 {한국 초기소설의 도선(道仙)사상}, 최창록의 {한국 신선소설 연구}, 이종은의 {한국문학의 도교적 조명}, 최삼룡의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이연재의 {고려시와 신선사상의 이해}, 김용범의 {도교사상과 영웅소설} 등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철학적 시각에서는 송항룡의 {한국 도교철학사}가 발표되었다. {한국 도교철학사}는 비록 노장철학에 치중했다는 특징을 보이긴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을 포착하려 했다는 면에서 주목할만한 결실로 평가할 수 있다. 김낙필의 『권극중(權克中)의 내단(內丹)사상』에서는 내단사상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한편 최혜영의 『조선 후기 선서(善書)의 민간윤리사상』에서는 조선 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에 체계적으로 접근하였다. 한의학과 도교의 관계에 관해서는 김낙필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도교적 성격" 및 정우열의 "동의보감과 허준(許浚)의 의학, 도가사상"에서 논의한 바 있다. 이 밖에 신선을 목표로 하는 대신 건강을 초점으로 하는 도교적 양생론에 관해서는 이진수의 "조선양생사상성립에 관한 연구 1-4" 및 "퇴계철학의 양생사상에 관한 연구" 등에서 검토하고 있다. 종교학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대표적 업적으로서는 김승혜의 "동문선 초례청사(東文選醮禮靑詞)에 대한 종교적인 고찰"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적 연구가 그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대표적 업적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최창록, {한국 신선소설 연구} 조선조에 성립된 {해동전도록}, {해동이적}, {청학집}, {증보해동이적(增補海東異蹟)}, {오계일지집(悟溪日誌集)} 등을 중심으로 한 여러 신선전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문학적 가치를 드러내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이들을 문헌 비판적으로 고증하는 작업보다는 이들에 바탕을 둔 공통된 구조와 독특한 유형을 분류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2) 이연재, {고려시와 신선사상의 이해} 이 책은 고려시대의 한시문학에 중점을 두어 그 속에 표현된 신선사상을 주제로 한 여러 테마의 선시어(仙詩語)의 유형적 특징을 분석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동안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에 수록된 자료에 의존하던 연구를 {동문선(東文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의 자료에까지 넓히고 도가 및 신선사상 일반을 폭 넓게 다루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 송항룡, {한국 도교철학사} 이능화 이래 소홀히 되었던 도가철학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밝힌 업적이다. 그는 도교사상과 도가철학을 구분할 것을 제의하면서도 이 책은 도교철학사란 주제 하에 오히려 도가철학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조선조의 도가철학에 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서경덕으로부터 {순언(醇言)}을 통해 나타난 이율곡의 도가철학, 박세당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한원진의 {장자변해(莊子辨解)}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중 서경덕을 도가철학적 인물로 제시한 것이 특이하며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서명응의 {도덕지귀론(道德指歸論)}, 홍석주의 {정로(訂老)}에 대한 논의는 불충분한 편이다. 4) 최삼룡,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김시습과 허균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한국 초기소설의 도선(道仙)사상 연구}를 확대, 발전시킨 작품으로서 시가가 아닌 주로 소설이나 설화의 측면에서 도교사상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한국 고대의 설화들에 나타난 신선사상적 요소를 밝히고 선가인물들의 계보를 추적하였다. 이어 {남궁두전(南宮斗傳)}, {최고운전 (崔孤雲傳)}, {전우치전(田于治傳)}, {금신선전(金神仙傳)} 등의 선도소설을 집중 분석하였다. 도선사상이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며 폭넓은 도교적 지식이 농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5) 김낙필, 『권극중(權克中)의 내단(內丹)사상』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은둔적 내단사상가인 권극중의 작품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를 철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연구이다. 유가적 지식층들의 신선사상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고 이를 도교적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내단사상을 체계적으로 정초했다는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그리하여 유, 불과 다른 내단사상의 본체론, 인성론, 실천론 등을 어떻게 제시했는가를 드러냄으로써 한국사상사에서의 위치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권극중의 성리학적 입장과의 종합적 고찰은 미진한 편이다.6) 최혜영, 『조선후기 선서(善書)의 윤리사상』 권중현의 {공과신격(功過新格)} 등 한국에서 이루어진 선서를 중심으로 그 속에 포함된 삼교융합(三敎融合)적 윤리사상을 분석하였다. 조선후기에서 신종교 발생에 이르는 사상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유익한 업적이다. 이 글에서는 민간도교의 민중의식, 삼교융합 사상, 소박한 충효인 사상 등이 지닌 사회적 맥락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7) 최창록, {한국 도교문학사} 이전에 출판된 {한국신선소설연구}를 포함하면서도 광범하게 도교와 한국문학과의 관계를 논의한 책이다. 그 범위는 단군신화의 선도적 해석에서부터 동문선(東文選)의 초례청사(醮禮靑詞), 여러 종류의 신선전, 도교 소설 등을 망라하고 있다. 나아가 80년대의 대중선도소설인 단의 성격까지 검토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부록으로 도교문학관련 자료를 집대성하여 이해를 돕고 있는 것도 유익한 자료이다. 이 책은 논문을 집대성한 것이므로 단일한 주제의식을 지니고 일관성 있게 논의를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8) 민영현, {선(仙)과 한} 한국 고유사상의 특징을 '선과 한'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한국사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핀 책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고대 사회에서의 신화를 분석하여 고려 이전과 고려 이후로 나누어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탐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치원과 김시습에 주목하여 이들이 가장 전형적으로 고유사상을 구현한 인물로 파악하고 민족종교에로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고찰하였다.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재야사학의 시각을 따르면서도 이를 비교적 차분하게 논구 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사상의 고유성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선도와 중국의 도교를 엄밀히 구별하고 도교를 주로 민간신앙의 차원으로만 제한하려 한 것은 무리한 느낌을 준다. 9) 박삼서,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도교사상적 배경을 살피고 최치원, 이규보, 김시습, 허균, 박지원, 홍만종 등의 작품에 나타난 도교사상적 요소를 고찰하였다. 이중 현대적 인물인 신석정의 시에 나타난 도교적 성격을 분석한 것이 흥미로우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시조설화나 향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삼국유사}의 도교적 성격을 드러내려 한 데 있다. 그 동안 {삼국유사}의 설화는 주로 불교사상과 관련시켜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만큼 심도 있는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느낌이다. 10) 정재승 편, {봉우일기} 현대의 한국선도 인물인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의 사상에 관한 자료집이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한국 도교를 연구하는 데나 한국 선도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이상과 같은 문학에서의 도교연구에 비하면 역사적 시각에서의 도교연구는 부진하였다. 사학계의 엄밀한 연구가 인문학의 기초인 것을 감안하면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서도 도교적 역사의식이 보다 자주적 민족사관에 입각했음을 밝히는 논문에는 한영우(韓永愚)의 "17세기의 반존화적 도가사학"이 있다. 한영우의 논문은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의 성격을 분석한 것인데 그는 우리의 전통사학을 유교사학, 불교사학, 도가사학으로 구분하고 {규원사화}를 도가사학의 대표로 간주한다. 그는 {규원사화}에서 도가사상의 원류를 한국에 두고 중국의 도교를 신도(神道)의 아류로 보았다는데 주목한다. 이렇게 사상적 축을 단군에 두면서 존화사상(尊華思想)을 배척하고 청과 연합하여 한을 정벌함으로써 동이문화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지키자는 것이 그 기본입장이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민족 주체적 경향에 관해서는 이상택(李相澤)의 "한국 도가문학의 현실인식 문제\\"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윤사순(尹絲淳)도 "한국사상의 일제잔재"라는 논문에서 유교에 입각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는 불교에 입각한 일연의 {삼국유사}가 더 주체적이고 민중적이며 {삼국유사}보다는 도교에 입각한 {규원사화}가 더 사대성을 탈각하고 민족본위의 자주적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볼 때 {규원사화}의 역사의식에는 복고적 순환적 역사의식과는 달리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개화기에 이르러 신채호(申采浩) 등의 민족사학자나 동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밖에 이병도의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는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신선설화적 요소를, 이내옥의 "연개소문의 집권과 도교\\"에서는 정치사회적 배경과 도교와 상관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최근에는 고구려 벽화의 신선사상이 {산해경(山海經)}의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이는 도교 성립이후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중국 동북부를 포괄하는 넓은 지역의 토착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도교와 민간신앙 신종교와의 교섭관계에까지 관심이 넓혀진 것도 이 시기의 중요한 성과라 말할 수 있다. 김태곤의 "민간신앙의 도교적 경향"에서는 민속 중 도교적 요소와 중첩되는 부분 및 도교적 영향이 강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그는 한국민속 중에 가장 널리 나타나는 성황(城隍), 칠성(七星), 조왕신앙 등의 세 가지가 도교에서 유래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밖에 박경화의 "고려시대의 도교와 민간신앙," 이은봉의 "토속신앙과 풍수도참사상의 발달"과 조흥윤의 "조선전기의 민간신앙과 도교적 성향"에서도 민간신앙의 도교적 경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에서 보이는 도교와 불로장생"에서는 도교사상과 신종교의 관련성을 논의하고 있다. 동학사상에 끼친 도교사상의 영향을 고찰한 논문으로서는 신일철의 "동학사상의 도교적 성격문제"가 있다. 이밖에 도교사상이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김홍철의 "한국 신종교에 나타난 도(道), 불(佛) 교섭" 에서, 도교사상과 원불교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양은용의 "한국도교와 소태산사상(少太山思想)"에서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증산교와 원불교에 영향을 끼친 {정심요결(正心要訣)}이란 자료가 발견되어 그 도교적 성격에 관한 집중 탐구가 이루어진 바도 있다. 둘째, 이 시기에 특기할만한 것으로서는 관련자료가 발굴되고 이에 관한 고증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양은용의 "복원궁(福源宮) 건립의 역사적 의의"에 의해 고려 중엽의 복원궁에 관한 자료가 상세하게 밝혀진 것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고증된 것이 그것이다.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서는 김시습의 『수진론(修眞論)』이나 정렴의 『용호비결(龍虎秘訣)』 등이 자료로서 실려 있는 정도이나 {해동전도록}의 전문이 소개된 것을 필두로 권극중의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 작자 미상의 {직지경(直指鏡)}과 {중묘문(衆妙門)}, 강헌규(姜獻奎)의 {참동계연설(參同契演說)}, 서명응(徐命膺)의 {참동고(參同攷)}, 곽재우(郭再祐)의 {양심요결(養心要訣)} 등이 알려진 것이 그것이다. 최근에 소개된 전병훈(全秉薰)의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이나 백운산인(白雲山人)의 {선불가진수어록(仙佛家眞修語錄)}도 주목할만한 자료이다. 특히 김윤수의 "주역참동계연설과 농려(農廬) 강헌규(姜獻奎)" 및 "서명응의 참동고와 역참동계상석(易參同契詳釋)"에서 고증작업과 그 사상적 맥락을 잘 분석하고 있다. 도교 관련자료가 빈약하고 이에 관한 고증이 소홀히 취급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자료가 발굴됨으로써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의 자료범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한국도교 연구의 바탕이 되는 중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성과의 축적은 한국도교 연구의 수준을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국도교의 연구방법에 관한 반성의 일환으로서 개념의 사용 문제가 논의된 것도 주목할만하다. 엄밀한 개념의 사용이 효과적인 학문적 탐구에 매우 중요함을 고려하면 이 논의는 늦은 감이 있다. 이들 중요한 개념들에 관한 합의는 간단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빈번히 사용되는 것들에 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수련도교에 관한 용어들은 학문적 여과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란이 되는 개념들은 도가와 도교의 구별문제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1) 성립도교(成立道敎), 교단도교(敎團道敎), 교회도교(敎會道敎), 과의도교(科儀道敎), 민간도교(民間道敎), 관방도교(官房道敎), 민중도교(民衆道敎) 등 도교의 제 양상을 분류할 때 사용되는 개념들. (2) 단학(丹學), 기공(氣功), 내단학(內丹學), 내단사상(內丹思想), 연단술(煉丹術), 선도(仙道), 선학(仙學), 수련도교(修練道敎), 기공양생학(氣功養生學) 등 도교적 수련의 체계에 관련된 용어들. (3) 신선(神仙), 선인(仙人), 진인(眞人), 성인(聖人)등 도교의 이상적 인격에 관한 표현들. 발흥기와 정착기를 거치면서 한국도교 연구는 상당한 탄력을 얻게 되어 1990년 후반에는 학제간의 연구나 국제교류를 통한 협력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다음의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한국도교에 대한 관심이 문학의 영역에서 촉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도교에 바탕한 도교적 문화현상에 대한 관심이 위주가 되고 도교자체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된 점이다. 그 결과 도교의 다양한 문화형태의 파악에는 기여했으나 도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미진한 결과를 낳았다. 둘째, 자료의 발굴이나 문헌비판 등의 작업이 상당히 이루어지긴 했으나 아직도 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이는 국사학계에서 도교에 관한 관심이 빈약한데서 초래된 점도 있다. 특히 한국도교의 원류를 찾는 작업에서 의존하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記古事)},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의 고증작업은 시급히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연구자들이 도교 자체에 대한 연구역량이 부족한 관계로 일본이나 중국의 도교연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를 반성하여 한국도교를 연구하는데 앞서 도교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중국도교에 대한 연구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으나, 아직은 기초단계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사회에는 한국도교 연구와 관련된 중요한 외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째 민족주의적 관심의 고조와 함께 한국 고유의 선도(仙道)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흥기된 것이다. 80년대에는 한편으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욕구에서 사회과학적 관심이 지대했던 반면 민족 고유의 정신을 찾자는 움직임도 상당하였다. 이 움직임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어 수련 및 양생관련 서적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기공학(氣功學), 기과학(氣科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에 결성된 한국정신과학회는 기적(氣的) 현상을 비롯한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는 목표 하에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어 한국도교 연구에 큰 자극을 주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이러한 관심의 결실로서 최근에 명지대학교 대학원과 수원대학, 원광대학교 대학원에 기공관련 전공이 개설된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이들 전공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알기 어려우나 한국도교 연구에 긴요한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V. 맺는 말   앞에서는 한국도교에 관한 연구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대체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는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척적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교가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보는 견해를 발견하기 어려운데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유, 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도 도교학의 역사가 아직 일천하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도교의 개념이나 연구범위에 관한 문제가 아직도 논의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요인 외에도 한국도교의 현상이 지닌 특수성에도 원인이 있다. 한국도교는 불교교단이나 유교의 유림처럼 뚜렷한 자기 모습을 지닌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도교현상 가운데 비교적 뚜렷한 도교적 모습을 지닌 것으로서는 과의도교(科儀道敎)와 신선사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과의도교는 국가행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것도 조선조 중엽 소격서(昭格署)가 혁파된 후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선사상의 경우는 은둔적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것이므로 역시 도교적인 외형이 분명하지 않다. 이 밖에 도교적 요소는 대부분 민간신앙이나 불교사상, 유교사상 등과 혼합되거나 문학, 예술 등에 묻혀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도교 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자료의 발굴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러 상당한 자료가 발굴되어 한국도교 연구에 기여한 바 있었으나 더 많은 자료발굴이 요청됨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들 자료를 엄밀하게 고증하고 국역하는 작업도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역된 자료들이라도 오역된 부분이나 부정확한 주석이 발견되므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보다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연구자료의 정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한국도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접근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도교적 요소나 영향을 탐구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의 도교학계에 국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공학자들이 모여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문학 분야에 연구 업적이 치우쳐 있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폭넓게 참여하지 못한 것이 눈에 띈다. 자료발굴이나 자료의 해석에서 국문학 분야에서는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으나 한의학, 예술, 과학, 체육, 민간신앙 등의 제 분야에서는 아직 불충분한 실정이다. 특히 국사학계에서 도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셋째,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의 심도를 높이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접근방법이 효과적이긴 하나 이것은 자칫하면 다양한 문화현상에 남아 있는 도교적 편린을 찾는데 그치고 도교현상을 일관하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시각에서의 연구도 곧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철학이나 종교학적 시각에서 도교사상 자체에 대한 탐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도교적 세계관이나 신론, 인간관, 사회사상, 가치관, 실천론, 종교적 의례 등에 관한 기초적 지식이 축적되어야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가철학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이런 면에서 요즈음 중국도교의 원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중국도교에 관한 연구성과들이 국내에 많이 번역, 소개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물들이 실용적 관심을 충족시키는데 급급하여 학문적 가치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유감스럽다. 특히 수련도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출판된 많은 번역물들은 엄밀한 학문적 검토 자세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일본의 도교학은 불교학의 성과가 축적된 후, 이것이 불도교섭사(佛道交涉史)로 이어지고, 여기서 다시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 다음, 이에 바탕을 두고 일본도교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따라서 일본도교를 탐구하는 경우에도 중국도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이 된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불교학적 시각이 잠재되어 있어 도교에 대한 비판적 선입견이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의 도교학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 이단적 사고나 민간문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함께 발전하였다. 따라서 그 동안 간과된 측면들을 재평가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사회주의나 과학주의적 시각의 표방으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한국의 도교학은 도교 자체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현상을 이해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한국 도교학의 효시인 이능화의 일차적 관심은 국학의 진흥이라는 애국적 동기였으며 도교자체의 이해는 부차적 문제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까지 은연중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장점이라면 한국도교 내에서 중국도교의 아류가 아닌 한국적 고유성을 찾으려는 문제의식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도교학 자체의 역량이 성숙하기도 전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는 것을 단점으로 들 수 있다. 따라서 도교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켜 한국적 고유성에 대한 특유한 정서를 여과시키는 것이 이제부터의 과제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논의되었던 쟁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학문적 성숙에 필요할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에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된 기공, 단학, 기과학 등에 대한 관심을 학문적으로 여과시키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넓은 의미의 도교적 현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잠복해왔던 도교적 수련이 대중적으로 표면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그 동안 주로 문헌 자료를 통하여 추체험을 통해 도교적 사유를 이끌어내는데 연구가 집중되어 온 것과는 상황이 다르게 된 것이다. 이들 현상이 직접, 간접으로 사회적 영향을 끼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정한 정도로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현상조사를 비롯한 사회학적 접근도 필요하며 이론이나 실천방법론을 철학적, 종교학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전통적 도교적 사유와의 관련성 문제도 관심 대상이 된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현대의 과학적 기공학 정립을 위한 모색

    현대의 과학적 기공학 정립을 위한 모색  1. 기공과 도교기공의 용어는 비교적 현대에 이르러 생겨나고 널리 쓰이게 되었지만, 기공 수련은 도교 수행론의 요체로 상고 시대로부터 실천되어 왔다. 신선술(神仙術), 방술(方術)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계열은 후에 선도(仙道), 내단술(內丹術), 단학(丹學) 등으로 발전했다. 체조법 계열의 건강법은 도인법(導引法) 또는 도인안교(導引按蹻)라 했고, 호흡법 계열은 토납법(吐納法), 조식법(調息法), 복기법(服氣法), 태식법(胎息法), 단전호흡법(丹田呼吸法) 등으로 불렀다. 명상법이나 정신집중법 계열은 정좌법(靜坐法), 양신법(養神法), 좌망(坐忘), 좌선(坐禪) 등으로 불렀다. 현대 기공은 도교의 비의적인 양생술이 대중화된 것이므로, 기공의 체계를 그려봄으로써 수련의 중요한 한 분야로서 현대 도교의 참된 부활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기공의 종류  기공에는 실로 다양한 방법과 유파가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기공이 끊임없이 고안되고 있다. 기공을 분류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으나, 크게 무술기공인 경공(硬功)과 의료보건기공인 연공(軟功)으로 분류한다.먼저 硬功(硬氣功)은 무술적 방식의 단련을 통해 강화된 기력의 운용으로 신체의 어느 한 부위, 또는 한 부위의 근육과 골격이 초인적인 내수력, 파괴력, 순발력 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경공은 다시 그 단련법에 따라 강공(剛功), 유공(柔功), 경공(輕功)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초인적 신체 능력이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한다는 데 쓸모가 있다. 중국의 기공이라 하면 아주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공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단연코 의료보건 기공인 연공(軟功)이다. 또한 연공은 보건을 위해 스스로 하는 보건가공(자기운기법)과 타인의 치유를 위해 해주는 의료기공(외기방사법)으로 대별된다. 체내를 운행하는 기를 內氣라 하고 기공사가 내보내는 기를 外氣라 부른다. 숙달된 기공사는 체외로 기를 방사할 수 있으며, 이 외기는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아픈 곳에 방사를 받은 환자는 환자의 內氣가 되어 산(酸), 마(痲), 장, 냉(冷), 열(熱), 중압(重壓) 등의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이 감각은 침구 시술시 느끼는 득기감(得氣感)과 거의 같다. 이런 의료기공에는 기공사가 환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의 기를 발방하는 것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외기요법(外氣療法)과 경락, 안마, 정체 등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직접적으로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는 수기요법(手氣療法)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공이라 하면 대부분 보건기공인 자기운기법을 가르킨다. 자기운기법에는 크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 정공(靜功), 몸을 움직이는 유의동공(有意動功),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지는 무의동공(無意動功, 자발동공)의 세 개로 나눈다. 정공이란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기공이다. 대표적인 것은 정좌공인데 신체 내부를 단련한다고 해서 내공(內攻)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좌시 깊고 완만한 호흡과 의념을 통해 몸의 내부를 동의 상태에 있게 한다. 기공은 근본적으로 동과 정,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동중정, 정중동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동공에는 그 자세에 따라 와식, 좌식, 입식, 보행공 등이 있다. 유의동공은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기공이다. 와식, 좌식, 입식의 자세에서 손발을 움직인다. 일정한 호흡법과 의념의 작용이 동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태극권은 보행공의 일종으로 손발뿐만 아니라 몸을 전후좌우로 움직이기도 한다. 실제는 정공은 좌선이나 명상 같기도 하고, 저 유연하고 우아한 동공을 보고 있노라면 체조라기보다는 무용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무의동공은 몸이 자아의 제어에서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자발공(自發功)이라고도 한다. 기의 움직임이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동(內動)에 머무르지 않고 몸의 외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것이 기의 외동(外動)이다. 보통 무의동공은 외동과 내동을 동반하는 기공으로, 학상장(1980년대 말 조금향이 창안)과 참장기공, 자발오금희동공 등이 대표적인 무의동공이다. 무의동공에 대한 평가는 주화(走火, 이상반응이나 부작용)라고 단언하는 것에서부터 기공의 깊은 경지라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초국서의 주장대로 연공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제어력을 완전히 방기하지 않은 한, 위험이나 부작용보다는 그 효용이 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기공의 연공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기공 공법을 수련하는 것을 연공이라 하는데, 연공에는 세 가지 기본요소가 있다. 그 하나는 자세와 동작을 바로 하는 조신(調身)이요, 그 둘은 호흡을 조절하는 조식(調息)이요, 그 셋은 의념을 가다듬는 조심(調心)이다. 비록 유파와 공법에 따라 형식면이나 이론면에서 다소간의 차이점이 있지만, 기공 연공의 원리를 따져본다면 결국은 이 세가지 요소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연공에는 세 요소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것을 기공에서는 形氣意의 합일, 또는 意氣刑의 합일이라고 한다. 세 요소중 어느 요소를 더욱 중요시 하느냐가 공법의 특색을 나타내지만,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올바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3. 기공의 원류  기공은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기공은 전래의 체조법과 호흡조절법, 의식훈련법을 한데 묶은 가장 오래된 건강법이다. 그 내용은 실로 수천년 동안의 여러 이론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도교나 도교, 중국 의학의 행보와도 밀착되어 있다. 즉 기공이란 올바르게 숨쉬기 위한 행기법(行氣法) 또는 토납법(吐納法)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호흡 양생법, 올바르게 움직이기 위한 도인법(導引法), 올바르게 먹기 위한 벽곡법(辟穀法)과 식이법(食餌法), 올바른 생식행위를 위한 방중술(房中術), 정신 수양을 위한 정좌법(靜坐法), 양신법(養神法) 등, 고대 이래의 양생법을 총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가 양생법은 도가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노자(BC 6세기)와 장자((BC 4세기)를 시조로 삼고 있으나, 그 원류는 상고 시대의 신선 사상에 뿌리박고 있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 양생법의 기본 사상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에 도가 기공의 핵심이 된 내단술(內丹術)은 신선술 내지 방술의 발전된 방식임을 부정할 수 없다. 먼저 호흡법은 예로부터 양생법으로 중요시해왔다. 호흡법에 관한 최고(最古)의 문헌으로는 전국시대 초기(BC 약 380년)의 <<행기옥패명(行氣玉佩銘)>>이 있다. <<노자>> 제6장에 “현빈의 문, 이것을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겨우겨우 이어지는 듯 하면서도 쓰는 데 힘들이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현빈을 생식의 신비로 보지 않고, 입과 코에 의한 호흡법으로 해석한 것이 하상공(河上功)의 주인데, 이 해석은 그 후에도 양생가들 사이에 전해져 왔다. 그것은 명대 손사막의 <<천금요방>> 권 27 <조기법>의 할주(割注)나 <윤진인복원기술(尹眞人復元氣術)> 등에 보인다. << 포박자>>에 네 개의 용례가 보이는 반청(反聽)도 자기 체내의 소리없는 호흡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리라. 도교의 이상적인 호흡은 태식인데, <<포박자>>에서는 모태내의 태아처럼 입과 코를 쓰지 않고 태내의 내기를 호흡하는 방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태식은 실제로 외기를 들이마시지 않는다기 보다 호흡시 의념을 많이 쓰는 것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장자>><대종사>편에서 말하는 “진인은 발꿈치로 숨을 쉬고 중인은 목구멍으로 숨을 쉰다”라는 구절도, 의(意, 의념)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해애야 할 것이다. 즉, 발꿈치까지 의식을 끌어내려 마치 거기에 입과 코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호흡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기공에서 의(意)는 오랜 내력을 지니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제 현대 기공의 상투어가 된 ‘이의영기(以意領氣)’나 ‘의도기도(意到氣到)’의 연원을 추적해보자. ‘의로서 기를 이끄는’ 법이 양생법으로서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황정경>>에서부터일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도학자 앙리 마스페로는 이 경전을 인용하면서 “행기는 내관을 통해 이루어진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때의 내관은 의수법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수대 소원방의 <<제병원후론>>은 도교의 양생법을 치료법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 의서인데, 여기서도 의(思, 念, 想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의 운용을 자주 설파하고 있다. ‘풍고편(風偏枯)’의 치료 방법을 예로 든다면, “등을 곧게 펴고 양발가락 및 손가락을 편다. 마음을 닫고 머리 위에서 기를 끌어내려 이것이 발가락과 발바닥에 이르는 것을 상상한다”라고 나와 있다. 도교 문헌에 빈출하는 ‘존사(存思)’, ‘존상(存想)’, ‘내시(內視)’, ‘내조(內照)’, ‘내관(內觀)’ 등은 기공에서 말하는 의수법의 원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들은 특히 상청파 도교에서 중시하는 단어들로, 내장에 살고 있는 신들을 하나하나 상상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상상 속에서 신들을 출현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 그 신을 그가 살고 있는 장기에 머물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장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평경>>에는 화상을 걸어놓고 오장신을 존사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는데, <<포박자>>의 경우에는 오직 내시(內視)라는 말만 사용된다. 선후를 성급하게 결정할 수는 없지만, 체내신이 아닌 장기 그 자체를 존상하는 방법도 예로부터 행해지고 있었다. 이미 후한대 순열(荀悅)의 <<신감(申鑒)>><속혐(俗嫌)>편에 ‘역장내시(曆藏內視)’의 술이 등장한다. 손사막의 <<천금요방>>에서는 다음처럼 오장의 존상도 제창하고 있다. “항상 황제의 내시법을 배우고 존상, 사념하며 오장을 보기를 현경과 같이 하고 오색을 뚜렷이 분명하게 하여 그만두는 일이 없게 하라.”(<<천금요방>>, 권27)송대까지의 각종 존상법에 관해서는 <<운급칠첨>> 권42~44의 ‘존사’장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내에서 신들이 모습을 감추고 즉물적으로 장기 쪽으로 중심이 옮겨진 것 같다. 장기의 존상뿐만 아니라 이미 <<천태소지관>>에는 오늘의 의수단전(意守丹田)이나 의수용천(意守龍泉)과 유사한 건강법이 있고, 또 송대의 의서 <<성제총록(聖濟總錄)>>에는 ‘내시단전’이라는 말이 보인다. 이제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앞에서 구분한 기공 분류법에 따라 몇 가지 기공법의 원류를 살펴보자.우선 정공(靜功)을 살펴보면, 그 원류는 <<장자>><외물>편의 다음 구절이 가장 이른 예의 하나일 것이다. “고요히 하여(靜然, 黙) 병을 고쳐야 하고 지압 요법을 사용하여 늙음을 멈추게 해야 하며 호흡법(寧)으로써 마음이 두근거리고 고양되는 것을 그치게 해야 한다.” 한편 <<장자>><대종사>편의 ‘좌망’을 정좌공의 원류로 보는 설이 있다. 좌망이 신체적 동작을 수반했는지의 여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대 사마승정의 <<좌망론>>에는 정좌를 실천했음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있다. 이처럼 정공은 최소한 2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제 동공(動功)에 대해 살펴보자. <마왕퇴도인도>에는 동공의 다채로운 자세들이 잘 소개되어 있으며, 또 남북조 시대의 의학자 도연명(456~536년)의 <<양성연명록>>에는 오늘날의 동공의 형태가 거의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동공의 하나는 팔단금이다. 송대 홍매의 <<이견지(夷堅志)>>에 “정화 7년(1117) 이사구는 기거랑(起居朗)이 되었는데, 그는 항상 밤에 기좌(起坐)하고 호흡안마하며 이른바 팔단금을 행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기좌’라고 했으니 좌식 팔단금을 말하는 것이다. 남송대 증조(曾慥)의 <<도추(道樞)>>를 보면 팔단금을 행하는 방법과 목적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중 제2단에 있는 ‘활을 당기는 자세’를 오늘날의 팔단금의 원형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시대를 거쳐 팔단금에 대한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오금희(五禽戱)도 그 역사가 길다. <망왕퇴도인도>에는 짐승의 움직임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자세가 열 가지 정도 있다. <<장자>><각의>편에 ‘웅경조신(熊經鳥伸)’이라는 도인법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회남자>><정신훈(精神訓)>에서는 ‘웅경’, ‘조신’ 외에 ‘부욕(鳧浴)’, ‘원곽(蝯蠼)’, 치시(鴟視)‘, ’호고(虎顧)‘ 등이 첨가되어 도합 여섯 짐승으로 늘어나 있다. 그리고 <<포박자>>에 이르면 그 종류가 더욱 다채로워진다. 이처럼 다양한 짐승의 도인법을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 등 다섯 가지 짐승의 자세와 몸놀림으로 패턴화한 것이 화타(2세기)의 오금희이다. 오금희의 고전적 시행방법은 <<양성연명록>>에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다.의료기공(외기방사공)에도 오랜 역사가 있는데, 고서에서 말하는 ‘포기(布氣)’가 오늘날의 외기방사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포기(布氣)’의 오랜 용례는 <<노자하상공주(老子河上公註)>> 제25장에 보이는 ‘포기천지(布氣天地)’라는 구절이다. <<유진선생복내원기결(幼眞先生服內元炁訣)>>의 ‘포기결(布炁訣)’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결에 말하기를, 무릇 포기하여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자 할 때는 먼저 환자의 오장 중 아픈 곳에 따라 그 방면의 기를 취하여 환자의 몸 안에 포입하고 환자로 하여금 그 쪽으로 향하게 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각을 깨끗이 하게 한 후에 비로소 포기한다. 포기가 끝나면 기를 마시게 한다. 귀적(鬼賊)은 스스로 달아나고 사기(邪氣)는 영원히 없어진다. 다음은 무의동공인 자발공(自發攻)에 대해 잠깐 언급한다. 예전에는 몸이 자기조절을 떠나 멋대로 운동하는 것을 ‘도대신(跳大神)’이라고 불렀다. ‘도신(跳神)’은 <<홍루몽(紅樓夢)>> 제25회의 내용에 “그때 사람들 가운데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튀어나왔는데 어떤 사람은 기도사를 불러 저주를 풀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무당을 불러 신내림(跳神)을 하자고 주장했다”라고 하여 그 일단이 보인다. 여기서 도신은 샤먼의 신내림을 말하는데, 기공의 외동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무의지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은 같지만, 기공의 외동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운의 유통을 위한 동작들이지만 도신은 신통력의 발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4. 현대 기공의 확립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공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지만, 비의적 양생술에서 대중의 건강법으로 발돋움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선 기공이란 표현은 진대(晉代)의 허손(許遜)의 <<정명종교록(淨明宗敎錄)>>에서 최초로 사용된 바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오늘날과 같은 기공이란 표현이 널리 유포된 것은 1957년 유귀진(劉貴珍, 1920~1983)이 <<기공요법실천(氣功療法實踐)>>이란 책을 출판한 이후이다. 유귀진은 1920년 하북성 위현 태생으로, 20대부터 위궤양을 비롯한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렸다가 기공을 통해 치유한 경험이 있다. 내양공(內養功)으로 불리는 그의 기공법은 명말청초 이래 하남성을 중심으로 민간에 전수되어 온 것으로, 그는 제6대 전수자에 해당한다. 내양공은 정공의 일종으로 와식과 좌식이 있으며, 특정한 호흡법과 의수단전을 행함으로써 대뇌에 휴식을 주는 한편 내장을 활성화시키는 기공이다. 유귀진은 내양공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기공요법을 과학적으로 정리, 체계화했을 뿐만 아니라 1947년부터 실천 활동에 관계했고 단산(1954년 개설)과 북대하(1956년 개설)의 기공요양원을 주재하며 환자를 치료하였다. 그가 시술한 환자의 호전율은 8할이 넘었다고 한다. 1957년 그가 펴낸 <<기공요법실천(氣功療法實踐)>>은 현대 기공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서 여전히 기공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56년부터 기공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958년까지 약2년 동안 각지에 70여 개에 달하는 기공 의료시설이 우후죽순처럼 개설되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의학원(의과대학) 부속병원의 기공병실 및 각 지방의 기공요양원이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1957년에 설립된 상해 기공요양소는 상해 제일학원, 상해 고혈압연구소 등과 협조하여 방송공을 새로이 엮어냈으며, 이것은 특히 중추신경계통, 순환기계통, 호흡기계통의 각종 질병에 매우 유효한 공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편 중국 정부 체육위원화에서는 1956년에 태극권 각 유파의 양식을 통합, 정리하여 24식으로 표준화한 ‘간화태극권(簡化太極券)’을 제정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서양 여러 나라에서까지 동양적 건강 체조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게 1954년을 기점으로 10년 남짓 번성하던 기공은 1966년부터 10년 동안 계속된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봉건 미신이니 무술이니 하는 눈흘김과 유형무형의 핍박을 감내해야 했다. 기공의 과학적 연구는 중단되었고, 이른바 기공사들은 몸을 움츠린 채 불안한 세월을 보냈다. 기공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문화대혁명이 종말을 고한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북경화학원의 화가 곽림(郭林, 1909~1984)의 극적인 등장은 그것에 박차를 가하였다. 곽림은 1949년 42세 때 자궁암에 걸려 몸에 여섯 번이나 메스를 대고도 실패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스스로 편찬한 기공에 의해 기적적으로 완치된 체험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 기공을 ‘신기공요법(新氣功療法)’이라 명명하고 1970년대부터 사회로 진출하여 북경 천던공원 등에서 병자들을 상대로 이 신기공을 지도했다. 여사의 이 신기공요법은 텔레비전에도 방영되어 기공은 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평판이 만조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 갔다. 1970년대 후반에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이 기공의 전파에 불을 지폈다. 1978년에 중국과학원 원자핵 연구소와 상해중의학원의 임후성(林厚省)이 합작하여 기공사의 손에서 방출되는 기(氣)를 현대 과학 계기인 특수한 센서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 해에 북경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같은 결괴를 얻었다고 한다. 상해 중의연구소의 임해(林海)의 보고에 따르면 기는 전자파, 정전기, 자기, 미립자의 흐름 등과 같은 정보로 기기에 수신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공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불식하는 계기와 함께 1970년대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기공계도 백가제방(百家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호기를 맞게 되었다. 그때까지 문외불출, 도는 미신, 무술의 딱지가 붙여질까 두려워서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고 있던 유파의 ‘비법, 비술’들이 앞을 다투 듯 소개되는가 하면, 옛 공법들에 기초하여 새로운 공법을 엮어서 내놓는 일이 유행처럼 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없이 많은 새로운 공법들이 발표되었으나 그 대부분이 정공이 아닌 동공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 중국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 공법의 일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내양공, 강장공, 방송공을 비롯하여 각 유파의 참장공, 곽림의 신기공요법, 소림내경 기공 계통인 궐아수의 일지선공법(一指禪功法)과 황인충의 공경기공(空勁氣功), 태극권에서 따온 임후성의 태극기공십팔식, 수련자가 한때 천만명에 이르렀다는 조금향의 학상장기공(鶴翔樁氣功), 주천공 계통인 이소파의 진기운행법(眞氣運行法), 신기공요법과 같은 계열인 장명무의 기공자공요법(氣功自拱療法), 불가 계열인 유한문의 선밀공과 부위중의 아미임제기공, 도가 무술 계열인 배석영의 무당기공, 민간 공법 계열인 이지여의 태호기공과 양매군의 대안기공(大雁氣功), 양사풍의 자발오금희동공(自發五禽戱動功), 육자결호흡을 중심으로 하는 마예당의 양기공(養氣功), 해정법사의 소림육통기공(少林六通氣功), 엄신의 개지공(開智功), 그 밖에 각종 건미공과 회춘공 등 적어 나가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대강 훑어본 바와 같이 현재 중국 기공은 학문으로서의 기공학, 치료법으로서의 기공요법(의료기공), 건강법으로서의 대중적 유행공법 등이 모두 급속히 앞서 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서 일찍이 신선술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한 상론은 여기에서 생략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고유한 유산중의 하나인 기공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한 큰 벼리만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기공의 신비적이고 기적적인 요소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일소해야 한다. 몇몇 특이공능자들이 기공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기공의 특이적 요소만을 과시하고 볼거리로 전락시켜 기공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다. 평범한 기공인들도 자신들조차도 겪어 보지 못한 기공의 신비적 요소를 떠벌리며 과시하는 경향은 기공을 마치 차력사들이나 흔히 말하는 사회와 동떨어진 도인들이나 하는 기이한 행위인양 만들어버렸다. 이런 병폐는 흥미거리만을 좇는 언론인들이나 방송들에 의해 더욱 가중되었다. 기공을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기공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 기공은 쉬운 것이며 심신 건강과 장생을 위해 보통 사람들이 행할수 있는 합리적인 체계임을 강조해야 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보통인들이 누구나 쉽게 행하고 느낄 수 있는 생활 기공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둘째, 기공에서 종교성을 배제해야 한다. 많은 기공단체에서 기공의 신비적 요소를 강조하여 종교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는 기공에 대한 오해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문제까지 야기시킨다. 가정파탄, 재산 갈취, 인력 약탈, 사회 이탈, 유파간의 분쟁 등등이 흔히 기공의 종교화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기공을 만인 공통의 관심사인 심신 건강만을 위한 것으로 발전시킬 때 대중적으로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공에 대한 과학적 접근 태도이다. 기공을 미신과 사기술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현대 세계에 발맞추어 크게 발전시키려면 기공의 공법과 효능 등을 과학적으로 조명하고 데이터를 산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기의 세계를 모두 수치화하고 과학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여 기의 세계를 모호하고 신비적인 베일 속에 가두어만 둔다면 인류의 장구한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기공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간직하는 것이다. 기공 수련과 치료에서 사랑과 미덕의 덕목을 뺀다면 한낱 기계적 치료술과 다를 바가 없다. 기공을 진정한 인간적 치료술로 승화시키려면 철저히 타인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공인은 성실하고 꾸준한 자기 수행을 통해 스스로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거듭나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 자체가 사회를 밝히는 치유의 빛이 되어야 한다.   - 참고문헌 -미우라 구니오(三浦國雄), 이승연 옮김, 주자와 기, 그리고 몸, 예문서원, 2003이동현, 건강기공, 이동현, 1990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중국 철학의 정신 - 세속과 초월의 합일

    중국 철학의 정신 - 세속과 초월의 합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의 최고 목표는 잡다하고 변화무상한 현실, 즉 형상을 초월하는 불변의 원리, 궁극의 존재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서양 철학에서는 보편과 특수, 초월과 내재, 신과 세계 문제로 나타난다. 또 불교에서는 삼론종의 경우 진제와 속제, 화엄종의 경우 이(理)와 사(事)의 문제로 나타나고, 신유교에서는 이(理)와 기(氣)로 대립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문제 해결에 있어 서양 철학은 둘 중의 하나의 선택에 골몰해 왔다. 현대의 유명한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단언한 바 있듯이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구조를 바탕으로 단순히 모양 바꿈식의 표현만 반복해 왔다. 바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한 이데아론의 전개는 이상에 해당하는 <이데아>와 현실에 해당하는 현상 간의 이원론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플라톤은 모든 육체적, 감각적인 것을 벗어나서 참된 이성만으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의 최대의 완벽한 산물이 기하학이라고 보았으며, 이 기하학만을 진실을 탐구하는 유일한 학문으로 간주했다. 바로 이성적으로 파악된 세계는 기하학적 형상의 완벽한 세계이다. 그것은 곧 참된 이데아의 세계요, 관념의 세계인 것이다. 이 초월적 이데아 관념은 중세에서 천국과 인격신의 관념을 낳았으며, 근세에는 자연의 입법자라는 관념을 낳았다. 인간과 세계로부터 초월해 있는 신(神)은 철학에서는 항상 미해결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며 종교에서는 절대화되어 인간은 신에 대해 무력한 존재로서 신의 은총의 대상이 되고, 신은 인간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과학에서 신은 자연에 질서를 부여한 입법자로 임명되어 무한히 존경받는 존재가 된다. 동양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문제에 있어 이 세계와 유리된 기하학적 이성, 혹은 초월적 존재를 끌어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나의 관념은 이 세계 자체가 구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色卽空, 空卽色, 一中多, 多中一, 非有非無 등의 논리에서 볼 수 있듯이 동양에서는 Neither/ Nor의 논리로 발전하여 이상과 현실, 즉 세속과 초월이 같다거나 혹은 그 양쪽을 다 부정한 가운데 길을 택할 둘 알았다.  이러한 논리는 단순히 논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인격적 차원의 문제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중국철학을 포함한 동양의 학문이란 이성 능력이라기 보다 인격적 차원과 관련되어 있으며, 知德一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중국철학의 정신은 각 유파 간에 다소의 사유 방식과 실천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상을 현실 속에 구현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으로서 최고 성취인 성인(聖人)이 되는 것, 이른바 天地境界에 도달하는 것이다. 흔히 유가(儒家)는 표면상 인륜도덕을 말하고 정치를 논하는 세간의 철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가에서 말하는 성인은 內聖外王적이다. 즉 안으로 인격을 완성하고 밖으로는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四端이나 맹자의 浩然之氣는 인간과 사회적 차원인 도덕경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우주적 관계인 천지경계까지 도달하고 있다. 공자가 자기 일생동안 도달해온 경계의 변화를 서술한 것을 보면, <사십이불혹>의 도덕경계를 지나 천명을 알고 천명에 순종하는 천지경계까지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맹자는 명도, 集意, 勿忘, 물조를 통해 호연지기를 길러 천지경계에 도달해야 함을 설파했다. 호연지기를 지닌 사람은 단순히 천하의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길을 걷는 大丈夫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대장부의 굳세고 큼은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호연지기를 지닌 사람의 굳세고 큼은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에서 말한 것이다. 주자는 “호연지기는 천명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된다. 호연이라 말하면 이미 넓고 크고 굳세다는 뜻이 있다. 장강, 대하가 호호하게 흐르는 것과 같다. 부귀, 빈천, 위무로도 타락시키거나 뜻을 빼앗거나 굴복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은 모두 호연지기 상태를 형용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한 바는 바로 天下와 天地 사이의 경계 차이를 말한 것이다. 道家에서 말하는 眞人도 유가의 성인과 같은 의미이다. 흔히 도가는 無, 無爲, 無知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세속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도가에서 말하는 무지는 자연상태, 혼돈상태의 무지가 아니다. 도가의 무지는 지식을 초극한 경지요, 後得의 무지를 지닌 사람은 지식상으로 만물과 혼연일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있다. 원시적 무지 상태를 넘어선 자각이 있기에 그 경계는 천지경계인 것이다. 한편 노자가 <바른 말은 거슬리는 것과 같다>거나 <賢德은 심원하여 세속과는 반대이다. 그런 후에야 大巡에 이른다>, <下士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만약 그가 비웃지 않으면 그것은 족히 도가 될 수 없다>라고 하여 세속에 반대되는 것으로 비춰지기 쉽다. 또 <기인는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고 하늘과는 친구이다. 하늘의 소인은 군자이고 사람의 군자는 하늘의 소인이다>라고 하여 도가의 도인은, 세상을 버리고 홀로 독립하여 산다>는 기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도가의 경향은 상식의 고정관념을 깨고자 한 것이지 세속을 반대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참으로 도가는 兩行을 주장한다. <그 하나라 함은 하늘과 함께 함이요, 하나가 아니라 함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이것이 도가의 天과 人의 兩行이다. <홀로 천지정신과 왕래하며, 시비의 분별을 포기하지 않으며 세속과 더불어 산다.> 이것이 도가의 방외, 방내의 양행이다. 묵자의 겸애설은 백성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겸애라는 측면에서 인간 본질을 구현하는 유가의 인(仁)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그는 도덕경계까지는 미쳤어도 천지경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한편 名家는 형상세계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형상을 초월한 보편자를 습득하려고 했다. 혜시는 천지일체론을 좇아서 <널리 만물을 사랑하라.> 하였고, 공손룡은 <이 변론을 다하여 명과 실의 관계를 바로 잡아 천하를 교화하려 한다> 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 내성외왕의 도를 강구했다고 자부했으나 형상 초월의 지식을 실생활에 충분히 활용하지는 못했다. 이는 마치 객관적 세계를 관념으로만 추구하려 했던 플라톤 류의 서양 철학적 한계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중국 철학은 장구한 세월을 통해 世俗과 超越의 세계를 조화시키려고 애써왔으며, 그 최고 경계를 세속에 살면서 동시에 세속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어로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그 세계를 가리키기 위해 논리 아닌 논리,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중국 철학의 특징은 철학 그 자체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철학을 넘어선 세계, 세속과 초월이 하나된 세계를 체득할 수 있는 修道와 道德의 길, 聖人과 眞人의 길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만약 세속과 초월이 하나가 되지 않고 둘 중의 하나만 택하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귀속될 뿐이라면 인간은 영원히 고통과 질곡, 모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속에서의 초월, 이상의 세계화만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精,氣,神論의 성립배경과 의미

    정기신론(精,氣,神論)의 성립배경과 의미 精,氣,神은 내단수련에서 三寶라고 하여 인간생명과 인체를 파악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호흡과 의념의 훈련을 통해 인체내부의 精,氣,神을 기르고 그것을 하나로 모아 융합시키는 것이 내단수련의 목적이다. 精,氣,神의 개념은 직접적인 精,氣,神論은 보이지 않으나 일찍부터 노자(老子), 장자(莊子), 관자(管子) 등에서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도덕경(道德經)>에는 희 , 이, 미(希,夷,微), <여씨춘추>에는 형, 정, 신(形,精,神), <회남자>에는 형, 기, 신(形,氣,神)이 나타나는데 이 모두 精,氣,神의 연원들이라 할 수 있다. 精,氣,神이 체계화되는 과정에는 한대(漢代)의 관자(管子)의 精氣說은 물론, <황제내경>의 의학적 영향도 크다. 漢代의 <<태평경>>에는 精,氣,神이 이미 집합된 형태로 나타나지만 내단 사상의 주요 수련 원리로 급진전하는 것은 당말 송초의 외단(外丹)의 비판과 내단의 부상에 이르러서이다. 포박자가 강조했던 금단술이나 이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약물 제조법이 외단법이라면 내단법은 인체내의 생명력, 즉 精,氣,神을 수련하자는 사상이다. 인간의 생명현상을 전체로 본다면 精은 생명력의 근원을, 氣는 생생 약동하는 생명의 흐름을, 神은 생명력이 지니는 신묘한 영감처를 의미한다. 그런데 내단수련에서는 精,氣,神을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눈다. 元精, 元氣, 元神은 선천의 精,氣,神이고, 교감의 精, 호흡의 氣, 사려의 神은 후천의 精,氣,神이 된다. 교감의 精은 남녀간의 교접시 누설되는 정액을 뜻하며, 호흡의 氣는 호흡을 통하여 얻는 기, 사려의 神은 분별작용이 주가 되는 보통의 지각작용을 뜻한다. 그런데 내단사상에서 귀중한 보배를 삼는 삼보(三寶)는 선천적 元精, 元氣, 元神이다. 현실적 삶에 만족하지 않고 후천의 精,氣,神을 통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선천일기(先天一氣)에 환원하자는 것이 수선(修仙)의 목적이다.修仙의 精,氣,神 수련과정은 다음과 같다. 精,氣,神의 수련은 기초를 닦는 축기(築基)의 단계를 거쳐, 精을 단련하여 氣로 화하게 하고, 氣를 단련하여 神으로 화하게 하며, 神을 단련하여 虛로 화하게 하는 등의 4단계로 나누어 진다. 築基는 호흡과 신체단련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精,氣,神을 원만히 하여 煉丹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연정화기(煉精化氣)는 정기를 약으로 응결시켜 주천(周天)하는 것이다. 하단전에 진정(眞精)을 모은 후 그 정을 기로 화하게 하여 인체의 전신 기경팔맥에 순환시킨다. 연기화신(煉氣化神)은 주천을 거친 후 태식호흡으로 음기가 소멸된 양신(陽神)을 이루어 그 양신이 자유자재한 묘용을 얻도록 기르는 수련이다. 연신환허(煉神還虛)는 양신을 두정을 열고서 대허공계로 나아가게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하면서 천지의 道에 합일시키는 수련과정이다. 허적무위(虛寂無爲)에 도달하면 神仙이 되는 것이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뼈의 힘에 대한 도교 비법 - 골수내공 소개

     뼈의 힘에 대한 도교 비법     7 년 전 골수내공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 뼈에 대해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것들은 딱딱하고, 뻣뻣하고, 밀도가 높았으며, 태극권과 명상을 통해 내 자신 안에서 계발하고자 했던 성질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내 뼈가 살아있고, 매순간 자라고 있으며, 내 생명이 뼈가 만들어내는 피의 성질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면 뼈들을 상호작용시켜서 내 건강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뼈 호흡(Bone Breathing)> 같은 간단한 운동만으로도 내 뼈들이 즉시 반응하여 지금 막 생명이 움트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고 경이롭고 놀라웠다. 뼈들은 따끔따끔하더니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리드미컬하게 가르랑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태극권을 하자, 근육과 장기는 사라지고 뼈만 남아 공중에서 가볍게 춤추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년 동안 <뼈호흡>과 <뼈압축(Bone Compression)> 수련을 계속해 오는데도 나는 여전히 문자 그대로 <뼛속까지 전율을 느낀다>. 뼈를 부드럽게 <때려주는> 수련을 한 후에는 하루종일 진동이 계속되는 깊은 마사지를 받은 느낌이다. 그 수련법들은 나이를 먹어 뼈가 바삭거리는 과자처럼 될까봐 남몰래 두려워했던 내 마음을 상당히 누그러뜨려주었다. 그대신 정반대의 문제가 생겨서, 밤에 아내가 내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두르면서 내 뼈가 너무 무거워졌다고 투덜거렸을 때 나는 속으로 기뻤다.   철사 다발로 매일 3분간 턱뼈를 때려주는 것이 경직된 턱근육을 푸는 데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임을 알고 나서부터 조금 남아있던 의심도 싹 사라졌다. 턱은 인체에서 가장 강력한 근육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TMJ증후군(턱근육 경직증)이 그토록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겉에서 턱뼈를 진동시키는 방법은 긴장된 근육의 경직 상태를 완화시켜 준다.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로 턱근육이 경직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 방법이 누그러뜨려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뼈와 함께 놀고 그것에 대해 명상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내 뼈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골수내공은 내 육체의 가장 밀도 짙은 부분과 내 영혼의 가장 미묘한 기운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일단 뼈로 옮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고나자 양가(陽家)의 고전 태극권 수련시의 의미가 갑자기 분명하게 느껴졌다.     기가 깊이 가라앉아 뼛속으로 스며들도록마음은 기를 움직인다네기가 자유롭게 흐를 때몸은 쉽게 마음을 따른다네     골수를 청소하는 일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독 과정이 늘 유쾌하진 않았고, 때로는 하루나 이틀 정도 몸이 아팠다. 심리적인 적응 문제도 있었다. <성기 기역도(Chi Weight Lifting)> 수련과 <때리기 수련(Hitting Practice)>은 처음에는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다. 회초리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종교적 광신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농담을 지껄였고, 내가 웬 극단적인 가르침에 걸려든 게 아닌가 하고 남몰래 의심도 했다.   지금까지 거의 7년간 이 수련을 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독자들에게 골수내공 수련이 육체적, 영적 건강에 합당한 운동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뼈의 힘을 계발하는 방법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했고 과학적이었다. 만탁 치아는 인체와 뼈에 작용하는 기의 기능이라는 고대 지식과 골화학이라는 현대과학적 지식을 통합함으로써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골수내공>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신비하고 이국적으로 들린다. 마스터 치아는 원래 그것을 <철삼기공>의 고급단계로 가르쳤다. 이 중국 용어들의 문화적 배경을 아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중국에는 무예가나 명상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서로 다른 수천 가지의 기공 수련법이 있다. 기공이란 문자 그대로 <호흡으로 하는 수련>을 뜻하며,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호흡을 사용하는 모든 수련이 이에 포함된다. 육체의 호흡은 <생명에너지>라고도 알려진 <기>를 활성화시키고 기는 육체적, 정신적 힘을 증진시킨다.   기공은 지금도 아주 인기가 좋다. 최근 중국에 갔을 때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서커스처럼 이동하며 벌이는 거리쇼가 있었는데, 그들이 제일순위로 보여주는 기공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런 기공 무예가들은 겉보기에 근육질은 아니지만, 굵은 철봉을 목의 부드러운 부분에 대고 눌러 휘게 만드는 묘기를 보여준다. 그들은 머리로 벽돌을 깨고, 몸 위로 트럭을 지나가게 하고, 날카로운 칼로 맨살을 그어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높은 단계의 육체적 성과이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기공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더욱 높은 영적 에너지를 받기 위해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 바로 기공이건만, 쿵후 영화와 기공 시범자들에 의해 기공 수련이 육체적 초능력으로 가는 길로 미화되었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기가 죽어 단순하면서도 건강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진정한 기공 수련을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내공(內功)>은 기공(氣功)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공은 <내적 힘으로 수련하는 것>을 의미하며, 육체적 호흡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심신의 힘(body-mind power)을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정신 집중, 내면의 이미지 만들기, 영육 과정에 대한 깊은 내적 감각의 개발은 내공 기술의 핵심이다.힐링 타오 센터에서 가르치는 내면의 연금술-내면의 미소, 소주천 명상, 오기조화신공, 감리 명상 대부분이 다 <내공> 기술이다. 내공법은 기공법보다 더 미묘하기 때문에 그 방법도 더 적고, 전통적으로 많은 부분이 비밀리에 전해지고 있다.   만탁 치아가 1987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골수내공을 배우기 위해서 10시간 강의를 듣는 데 미국 달러로 약 4천 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고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만탁 치아는 이미 10년 전에 마스터 청 야오룬에게서 그 수련법을 배웠었다. <골수 청소하는 법>을 배울 때 만탁 치아가 지불한 대가는 스승 혹은 <사부>가 비밀을 전수할 만큼 신뢰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시종처럼 헌신하는 것이었다. 만탁 치아의 성급한 성격은 이처럼 느린 과정을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수련을 마쳤을 때 만탁 치아는, 중국의 내면적 기술에서 정확하고 실용적인 가르침을 추구했던 수많은 서구인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이 비밀들을 자세히 안내하는 책을 출판하고 싶었다.   비전되어온 이 책의 골수내공 방법들은 <철삼(iron shirt)>을 얻었거나 <철신(steel body)>을 이룬 마스터들의 방법과 같은 것이다. 철신이란 영화 속의 전설처럼 단단한 살과 근육으로 된 수퍼맨의 몸이 아니라, 뼈와 장기가 기에너지로 뭉쳐져 노화와 질병에 저항하는, 몸의 내면적 힘이다. 거친 타격이나 갑작스런 추락에서 오는 몸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탄력성은 근막을 기로 감싸서 몸이 외부의 힘을 튕겨 내보내도록 도와주는 데서 온다.   골수내공은 엄청난 양의 기를 만들어내므로 이 기를 정화시킬 수 있는 자기 수련이 부족하면서 지나치게 열심인 학생에게는 위험하다. 몸은 초과된 에너지로 인해 과열될 수 있는데, 명상은 이 미숙한 에너지를 원기 혹은 <신(神)>으로 되돌리는 안전 장치이다. 이런 까닭에 힐링 타오 체계에서는 기공으로 잉여에너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소주천 명상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기를 정화시켜 사용할 방법이 없다면, 내적 힘을 개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골수내공의 <성기 기역도 수련>을 아주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성에너지를 만들어낸 한 고급 수련자를 알고 있다. 그당시 그는 때리기 수련에서 사용하는 도구로 그 에너지를 진동시켜 뼛속으로 보냈다. 그는 성기로 이 책에서 권장한 것보다 5kg 이상이나 초과한 아주 무거운 중량추를 들어올렸다. 그는 수련에 너무 집착해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가방을 꽉 채워 가지고 다녔다. 그 학생은 자기가 만들어낸 모든 에너지를 소화시켜주는 명상을 하지 않는 심각한 실수를 범했다. 그는 온갖 동물들과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환상을 보기 시작했고 매우 편집적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저차원 영혼들이 그의 과도한 성에너지를 기생충처럼 빨아먹고 있다는 심령술사의 말을 듣고 그는 결국 모든 수련을 그만두었다. 너무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지 않으니까 그의 에너지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괴이하고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새로운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 경고가 될 수 있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지나침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성기 기역도 기술>을 천달러에 팔았던 한 대만 선생은 자신의 성기로 135kg을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최근 아주 젊은 나이로 그가 죽음으로써 그 일이 그에게 역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고환에 엉킨 핏덩어리가 뇌로 올라가서 죽었다고 한다. 명상과 균형을 이룬 식이요법을 하면서 부담없는 무게를 들어올리는 실용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그는 아직까지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대 중국에서 내면의 기를 개발하는 수련을 했던 도교인들은 자신들의 불멸성을 깨닫기 위해 가는 긴 여정에서 <뼈 의식(bone consciousness)>을 중요한 단계의 하나로 보았다. 도교 고전에 따르면, 후천의 기-출생 이후로 음식, 섹스, 생각, 감정에 의해 얻어지는 모든 에너지-는 소주천 회로를 돌다가 골수와 뇌에 저장되어 있던 선천의 기를 휘저어 풀어놓는다.이 선천의 기 혹은 원기(元氣)가 영적 의식으로 정화되어 하복부에 불멸의 태아를 탄생시킨다. 이것이 자라 영적인 동자가 되고, 결국은 영적으로 성숙된 인간인 <빛의 몸> 혹은 <불멸체>로 결정체를 이룬다.   도교인들에게 뼈는 인체 내에 영적 생명을 안정시키거나 <안착시키는> 비밀스런 열쇠였다. 그 전에 뼈는 청소되어야 하고 그것의 진동율-뼈의식-은 보다 정화된 수준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뼈의 기 운동은 경락체계, 혈액, 내부 장기, 내분비선, 신경체계를 흐르고 있는 기를 청소하고 정화시키는 과정을 촉진시켜준다. 뼈는 인체 내에 수직 구조를 만들어서 몸의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길인 <충맥>과 같은 특별한 에너지 통로가 몸안에서 작용하도록 하고, 몸 주위를 나선형으로 도는 <대맥(帶脈)>도 작용하게 한다. 이 통로들은 안테나 구실을 함으로써 지구, 달, 태양, 별의 자기장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인다.-이것은 신성에 대한 우리의 자각을 다져주는 디딤돌이다.   이런 점에서 골수내공에 대한 책 전체가 그렇게 비밀스런 주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주제는 몇몇 선택된 그룹의 무예가들의 관심을 끌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육체가 보다 건강하고 안정되기만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도 골수내공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한때는 이런 수련법들이 극비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도교의 비밀들이 꽃처럼 열려 있어서 그 달콤한 향기에 이끌린 사람들은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뼈 건강에 관해 쓴 현대의 인기 있는 서적들은 대부분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식이요법이나 미네랄 보충 등의 충고에 머무르고 있다. 이 질병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칼슘 부족으로 뼈가 부스러지는 병으로, 나이 든 사람, 특히 폐경기 이후의 여자에게 커다란 비극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칼슘 보충이 골다공증을 막는 데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골다공증의 진행을 역전시키는 것은 뼈에 부드러운 압박을 주고 뼈들을 제자리에 유지시켜주는 운동과 더불어 체내의 호르몬 균형을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골수내공은 뼈를 운동시켜서 뼈의 밀도를 증가시켜주고, 성에너지 마사지 기술은 호르몬 생산을 자극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이 운동들을 한다면 수많은 여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뼈에 관한 현대 서적 가운데 하나의 예외로 가브리엘 쿠젠의 명저, <영적 섭생법과 무지개 다이어트(Spiritual Nutrition and the Rainbow Diet)>(Cassandra Press,1986)를 들 수 있다. 그는 우리의 뼈가 신체 가운데 유일하게 단단한 결정체적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뼈로 부터 장기, 경락, 혈구, 신경 등으로 보내지는 전자기장을 과학자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뼈의 이러한 전자기 생성 능력은 <압전기 효과(piezo-electric effect)>라고 불리며 수많은 과학적 연구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 신경체계, 심장도 자기장을 방출하여 뼈와 다른 조직과 공명한다. 결정체인 뼈조직은 이 에너지와 정보를 더 키워서 그 시스템의 나머지 부분으로, 세포와 준세포의 결정체 조직으로 방출해 내려보낸다." 이 말은 뼈가 우리 몸 전체의 음차(tuning fork, 발음체의 진동수를 계산하는 기구)와 다름없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깊고, 리드미컬하고, 박동치는 에너지를 그토록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뼈의 견고성 때문이다. 그리하여 뼈는 우리의 최소 원자를 별들의 원초적 리듬과 연결시킨다. 골수내공은 우리 몸이 수정처럼 맑은 음으로 진동할 수 있도록 우리 몸의 음차의 범위와 순도를 체계적으로 증가시키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뼈의식(bone consciousness)은 무예 외에도 다른 다양한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출되어 있다. 중국 문화의 큰 줄기 가운데 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매장과 조상숭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도 드러난다. 부모나 조부모의 뼈가 소음이 심하고 교통이 혼잡한 곳 근처나 물, 바람, 산 등의 기운의 균형이 깨진 곳에 묻혀 있다면 당신의 삶은 해를 입을 것이다. 중국 이론에 따르면 이 <뼈의 마법>은 당신 몸의 진동 주파수가 부모 몸의 진동 주파수와 거의 같기 때문에 효력이 있다. 그들의 뼈가 해를 입는다면 우리의 뼈도 해를 입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과 가장 가까운 그들과 미묘한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뼈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뼈는 이미 떠난 영혼과의 매개체로서 계속 활동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뼈는 근육이라는 장막 안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지휘봉과 같다. 우리는 보다 높은 조화의 마법을 펼쳐보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삶에서 그것들을 흔들어 댄다. 삶이라는 교향곡을 연주할 때 필요한 번쩍임과 돌진감 없이 우리의 뼈가 텅 비고 부서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나이 들었을 때이다. 뼈를 강하게 할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마구 때리고, 달리고, 휘청거리면서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뼈를 혹사했는지 잠시 생각해 보라. 중력 또한 한치의 여유도 허락치 않고 뼈들을 잡아당김으로써 압력을 가중시킨다.   골수내공은 우리 육체의 핵심을 탐험하고 우리의 영적 존재가 그 단단한 육체의 의지처에 뿌리 내리는 방법을 배우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그 혜택은 우주적이며, 우리의 뼈 깊숙이 있는 무의식적 힘을 사용하도록 가르쳐주고, 영적 목적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도 그것을 이용하도록 가르쳐준다. 그다음 단계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는 <기>라는 이 옛 지식이 우리의 뼈에서 살아있는 느낌으로 다가설 때까지 골수내공 수련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만탁 치아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다. "해봐야 얻는다."   - 마이클 윈은 힐링 타오 센터의 상급 지도교사이며, 만탁 치아와 함께 「성도인술: 남자 성에너지 일깨우기」의 공동저자이다. 작가, 사진작가, 기업가로서 아내이자 공동교사인 안나 조이 게이하트와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다.   - 골수내공 수련에 필요한 <<골수내공>> 책자와 <<철사다발인 철삼봉>>, <<기역도>> 등은 <타오쇼핑몰>에서 구입하십시오.        * 저작권법에 의거하여 컨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www.taoworld.kr     

  • 기공 수련자들의 사회적 역할

     기공 수련자들의 사회적 역할  기공은 몸의 내기, 즉 생명에너지를 강화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병을 치유하는 심신 수련의 한 방법이다. 건강을 유지하고 치병하는 방법들은 수없이 많지만 기공만큼 인체를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다루는 건강법은 드물다. 기공은 精氣神이라는 삼보 개념으로 인체를 파악하여 이를 각각 닦는 調身, 調息, 調神 수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의하면 건강은 신체적 안녕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안녕을 포함한다. 이렇게 볼 때 기공은 획일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세계에서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종합적인 건강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공인의 사회적 역할은 국민 건강 증진과 계몽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현대인은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분석적인 전문성과 획일화 때문에 자연인들의 특성인 전체성과 조화성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정신적 스트레스와 유해 환경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지고 고질병과 난치병은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5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고유한 유산중의 하나인 기공은 크나큰 역할을 담당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기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기공인은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인가?      첫째, 기공의 신비적이고 기적적인 요소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일소해야 한다. 몇몇 특이공능자들이 기공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기공의 특이적 요소만을 과시하고 볼거리로 전락시켜 기공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다. 평범한 기공인들도 자신들조차도 겪어 보지 못한 기공의 신비적 요소를 떠벌리며 과시하는 경향은 기공을 마치 차력사들이나 흔히 말하는 사회와 동떨어진 도인들이나 하는 기이한 행위인양 만들어버렸다. 이런 병폐는 흥미거리만을 좇는 언론인들이나 방송들에 의해 더욱 가중되었다. 기공을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기공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 기공은 쉬운 것이며 심신 건강과 장생을 위해 보통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체계임을 강조해야 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보통인들이 누구나 쉽게 행하고 느낄 수 있는 생활 기공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둘째, 기공에서 종교성을 배제해야 한다. 많은 기공단체에서 기공의 신비적 요소를 강조하여 종교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는 기공에 대한 오해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시킨다. 가정파탄, 재산 갈취, 인력 약탈, 사회 이탈, 유파간의 분쟁 등등이 흔히 기공의 종교화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기공을 만인 공통의 관심사인 심신 건강만을 위한 것으로 발전시킬 때 대중적으로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공에 대한 과학적 접근 태도이다. 기공을 미신과 사기술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현대 세계에 발맞추어 크게 발전시키려면 기공의 공법과 효능 등을 과학적으로 조명하고 데이터를 산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기의 세계를 모두 수치화하고 과학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여 기의 세계를 모호하고 신비적인 베일 속에 가두어만 둔다면 인류의 장구한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기공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간직하는 것이다. 기공 수련과 치료에서 사랑과 미덕의 덕목을 뺀다면 한낱 기계적 치료술과 다를 바가 없다. 기공을 진정한 인간적 치료술로 승화시키려면 철저히 타인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공인은 성실하고 꾸준한 자기 수행을 통해 스스로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거듭나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 자체가 사회를 밝히는 치유의 빛이 되어야 한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      

  • 현대판 神仙을 꿈꾸는 120세 장생수련법

     살아져 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120세 건강 장생수련법    “3,40대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망치고, 5,60대는 병든 몸을 고치기 위해 번 돈을 몽땅 탕진한다.”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살다가 병들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우리 삶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좀더 여유롭게, 유쾌하게, 하루하루 건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당장 많이 웃고, 욕심을 줄이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행복은 내일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순간을 의미있게 만드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입니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즐기십시오. 오늘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은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올바른 건강 생활을 실천하면 병이 생기지 않고 늙지 않습니다. 늙더라도 곱게 늙으며 자신이 부여받은 원기(元氣)가 자연 소진되어 평온하게 죽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不老不死 신선도 좋고, 신선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죽을 때 곱게 평온하게 죽을 수 있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가면 더욱 즐겁고 보람있기에, 현대판 신선 - 120세 장생수련법인 타오수련시스템을 나누고자 합니다.    “죽음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이지 않으면 안된다. 육체의 조직은 스스로 재생이 가능한 것이다.” -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 박사(노벨화학상 수상자)   세포는 끊이없이 재생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탐진치, 정력의 누수, 음식독, 공해독, 기타 외부 충격 등으로 세포가 질식하여 재생력이 약해져 병들고 늙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보기술(IT)에 이은 생명공학(BT)의 시대이죠. 이 기술이 발전하면 못 쓰는 장기도 복제하여 교체한다고들 아우성입니다.   장기를 복제한다고 해도 생명 연장은 될지언정 삶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체의 탁한 것을 정화하고 양기를 충만시켜 나갈 때 스스로 끊임없이 복제하는 신선체질이 됩니다. 신선체질이 되어감에 따라 몸과 마음이 한층 고양된 영화로운 지상낙원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의 신선체질을 위한 7계명 1. 장기마사지와 장푸리 운동을 생활화하여 食道가 통하게 한다.2. 음식을 줄이고 기식(氣息)을 늘여나간다.3. 정력의 낭비를 막고 고차원의 건강과 정신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4. 걷기, 등산 등 몸을 많이 움직인다. 5. 일과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게임하듯 즐긴다. 6. 깊게 호흡하고 피부 전체로 호흡한다.7. 담백한 자연의 먹거리를 즐긴다.      * 본 컨텐츠를 전재할 때는 타오월드 출처를 꼭 밝혀 주십시오.ⓒ www.taoworld.kr